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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 대회 참가 후기 - Trail du Saint-Jacques Le Puy en Velay by UTMB

Le Puy en Velay

Trail du Saint-Jacques은 프랑스 Le Puy en Velay에서 열리는 UTMB 월드시리즈 대회입니다. 대회 이야기에 앞서 Le Puy en Velay라는 도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데, 프랑스를 지나는 수많은 길 중 GR65라는 루트가 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이어지는 1,119km의 길인데, 이 길이 Le Puy en Velay를 지나갑니다. 또한, 이 길은 론세스바예스에 다다르기 전 많은 순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는 지점인 생장(Saint-Jean-Pied-de-Port)을 지나치게 되는데, 이 때문에 Le Puy en Velay에서부터 순례길을 시작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올해 벌써 12만 명이 넘는 순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는데, 이 중 1,000명 조금 안 되는 순례자가 이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올해 걸은 순례자 중 한국인의 비중이 7번째로 높은데 아직 Le Puy en Velay에서 출발한 한국인 순례자는 없습니다) 덕분에 도시 곳곳에서, 심지어 달리는 중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camino de santiago
Le Puy en Velay 시내를 걷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흔적

레이스 목록

대회는 러닝스톤을 주는 100M, 100K, 50K, 20K 카테고리와 가볍게 트레킹 수준으로 즐길 수 있는 Rando 29K, 18K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중 3개의 러닝스톤을 획득할 수 있는 100K 카테고리인 Grand Trail du Saint-Jacques에 참가했는데 실제 코스 길이는 75km, 누적고도는 3,100m였습니다. (라이브트레일이나 어플에서는 약간씩 다르게 나오지만, 홈페이지 기준) 이전까지 가장 긴 코스를 달렸던 레이스가 2019년 서울50K였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코스 길이에 비해 누적고도가 높지 않은 편이라고 판단하여 이 카테고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레이스 후기 

참가 인원이 가장 많은 카테고리여서 두 그룹으로 나뉘어 순차적으로 레이스를 시작했고, 저는 두번째 그룹에 속해 원래의 출발시간인 8시보다 조금 더 늦은 825분에 출발했습니다. 대회 전날까지 천둥번개를 동반하는 비가 내려 달리기 쉽지 않겠다고 짐작하긴 했지만 실제로 달려보니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좁은 코스가 많은데 너무 많이 젖어 있어 진흙투성이였고, 그런 진흙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초콜릿퐁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사람이 속출했고 저 또한 2km 지점도 못 가서 미끄러졌는데 하필 미끄러질 때 스틱이 바위 사이에 끼는 바람에 스틱이 휘고 말았습니다. 결국 휜 스틱과 함께 나머지 73km..

 

bottleneck
대회 초반 엄청난 병목 현상

미끄러지면서 스틱이 휘어진 것을 제외하면 레이스 초반은 무난하게 진행했습니다. 달릴 수 있는 구간에서 달리고 오르막에서는 어차피 병목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문제는 세 번째 CP에서 발생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CP에서는 물과 콜라만 마신 반면 세 번째 CP에서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음료를 쥬스인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200ml 컵에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셨는데 마시자마자 배가 뜨거워지고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마신 건 쥬스가 아니라 아주 소량만 물에 넣고 희석해서 마시는 고농축 시럽이었습니다. 배가 이상해지면서 더 이상 음식은 넘어가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동안 먹었던 걸 모두 게워냈습니다. 모두 게우고 나니 에너지가 급격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졸음까지 쏟아졌습니다. 평지에서조차 달리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진지하게 DNF를 고민했는데 이미 세 번째 CP를 나온 터라 네 번째 CP까지만이라도 어떻게든 도착한 다음에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네 번째 CP44km쯤에 있었는데 다행히 40km를 지나면서부터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고 쏟아졌던 졸음도 어느샌가 사라졌습니다

코스 절반도 지났고 몸 상태도 괜찮아지겠다 이대로면 목표했던 시간 내에 도착하지는 못하더라도 완주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0km 이후로 힘든 오르막은 없었으나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추워지고 땅이 더 미끄러워졌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휘어진 스틱으로 애를 써봤지만, 뒤에서 미끄러지는 아저씨의 백태클은 피할 수 없었고, 이 외에도 몇 번은 더 미끄러지거나 휘어진 스틱이 다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레이스 전 가장 우려했던 근육경련이 일어나지 않아서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race finish
75km 완주 순간

초반 병목현상과 세 번째 CP에서의 이슈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기록을 냈겠지만, 완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한 레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6월 말과 8월 말에 참가 예정인 레이스가 있는데 두 레이스도 만만치 않은 레이스라 회복과 연습을 빡세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새로운 스틱을 빨리 장만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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