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에서 트레일러닝을 하며 드는 생각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웃도어의 성지, 샤모니에 와서 처음 마주한 모습은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방문이 운동하기 좋은 여름이어서 그런지 러닝, 트레일러닝, 하이킹, 로드 자전거, MTB, 클라이밍 등 운동을 즐기는 사람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샤모니 시내를 돌아다니면 모두가 운동에 걸맞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심지어 여행객들도 캐리어를 끌기보다 큰 배낭을 메고 다녔습니다. (캐주얼한 패션은 그나마 간혹 보이지만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은 지금 떠올려봐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사실 샤모니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붐비는데 바로 스키 때문입니다. 스키장이 여기저기 있을 뿐 아니라 굳이 스키장에 가지 않아도 아무 산에 올라가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곤 합니다. 옷도 두껍게 입고 장비도 챙기다 보니 안 그래도 자주 오지 않는 샤모니 시내버스는 겨울 내내 미어터지기도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오늘은 샤모니에서 트레일러닝을 하며 느낀 몇 가지 생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주위 환경의 중요성
지리적 특성상 샤모니에 산다면 산을 안 가볼 수 없습니다. 동네 길을
걸어도 주위를 둘러보면 등산로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존재하고 양옆으로 2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솟아 있습니다. (물론 3~4천 미터까지 올라갈 수도 있음) 제가 서울에 살 때 러닝보다 트레일러닝에 더 빠진 계기 중 하나가 접근성이었는데, 집에서
천이나 트랙 같은 러닝 코스보다 북한산 둘레길이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정말 게으를 땐 집에서
그나마 가깝다는 우이천에 가는 것조차 귀찮아서 러닝을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걷고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걸어 도착하면
이미 2~30분은 지나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집 근처에서 달리자니
차도 많이 다니고 신호등 때문에 흐름이 끊기기도 해서 이 방법은 많이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샤모니에서는 집을 나오자마자 러닝을 시작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위치가 러닝하기 좋은 코스에 위치해 있어서가 아니라 샤모니에 사는 어느 누구든 집 밖을 나오자마자 러닝을 바로 시작하기 좋을 정도로 길과 주변
산책 코스가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참고로 샤모니에는 신호등이 하나도 없는데 언제나 차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운전자도 자전거나 달리는 사람들을 많이 배려해 줍니다. 또한,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샤모니 시내 중심을 달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산이 크고 높은 만큼 코스도 매우 다양합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게
훈련할 수 있고 유럽 트레일러닝 대회, 특히 UTMB 시리즈
대비가 가능합니다. 한국에 있는 산은 비교적 낮은 편이라 한 번에 높게 올라가기보다 여러 번 업힐과
다운힐을 달리는 방식이었다면, 이곳에서는 한 번에 두, 세
번 정도 쭉 올라가고 쭉 내려오는 방식입니다. 같은 누적 고도여도 조금 올랐다가 내려가면서 에너지를
보충한 후 다시 올라가는 것보다 쉼 없이 한 번에 쭉 올라가는 게 개인적으로 더 힘들기 때문에 작년 MCC에서
많은 고생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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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코스는 안 달릴 수가 없지! |
두 번째,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운동 열정
한국에서 트레일러닝의 인기가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곳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트레일러닝을 하고 있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제가 속한 클럽에서도 부모와 자녀가 같이 가입하여 달리는 경우도 있고, 클럽에 속하지 않아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많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운동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열정은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데, 이를 보며 저 자신이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저는 애초에 잘 달리는 편도 아닌 초보
트레일러너이지만, 여기에서 특히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각종 대회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고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정말 잘 달립니다. 샤모니 트레일러너를 청년/중년/장년-남/여로 구분한다면 현재 저의 수준은 중장년 여성 수준과 가장 비슷합니다. (물론 저보다 훨씬 빠른 중장년 여성분도 많으시지만 유럽에서의 트레일러닝 대회 참가와 클럽 러닝을 기반으로
봤을 때 가장 가까운 그룹) 한국에서는 그래도 중간은 간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곳에서는 절대 불가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아도 운동을 좋아해서 샤모니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제 와이프 직장 동료의 남자친구가 이런 경우입니다. 캐나다 퀘벡 출신인 이 친구는 러닝만 하다가 샤모니에 와서 트레일러닝에 입문한 친구인데 지난 달 마라톤 풀코스에서 2시간 22분을 기록하더니 첫 트레일러닝 대회에서도 14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에서 마라톤 풀코스 2시간 22분이면 마스터즈 우승권인데 허허..) 이렇듯 이곳 샤모니는 사방을 둘러봐도 괴물투성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샤모니는 운동을 못 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곳입니다. 어려서부터 대자연 환경에 노출되고 부모님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운동 몇 개는 즐기게 되는 곳입니다. 서울이 먹고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상당하다면, 이곳 샤모니는 자연 인프라가 상당한 수준입니다.
물론 저보다 늦게 트레일러닝에 입문하시는 분도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달리시는 분도 많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제 자신이 너무 늦게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늙어가는 속도보다 성장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빨리 달릴 필요 없이 오직 완주만을 목표로 부상 조심해 가며 꾸준히 달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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